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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 얼굴을 가리울 때   15-08-18
관리자   15,656
 
함석헌이 일제강점기 오산학교 교사를 하던 때이다. 좌익학생들이 일을 꾸미어 단체로 선생을 때린 일이 생겼다. 물론 그만 그런 꼴을 당한 것은 아니나, 민족주의자라는 명목으로 그런 린치의 대상이 된 것이다. 몇몇 학생이 몰려서 그를 때릴 때 선생은 묵묵히 몰매를 맞으며 얼굴을 가렸다. 얼굴에는 상처를 안 내고자 하는 마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물으니 그가 하는 말이다. 자신도 사람인데 자기 때린 학생의 얼굴을 보면 어찌 평안하겠느냐는 것이다. 저 놈은 나 때린 놈이라고 마음에 원한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 얼굴 가리고, 눈 감아서 나 때린 놈이 누군지 알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을 돌려서 대라고 한다. 예수님의 생각은 인간의 기본적인 자존심마저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은 오른 뺨을 치거든, 더하지도 말고 덜하지도 말고 그렇게 보복해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구약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법령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아니라 왼편을 돌려대라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따라 우리는 왼편을 돌려댄다. 적어도 나는 목사라는 명분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왼편을 돌려댈 때는 이제 끝이라는 심산이 있다. 이 정도를 하면 너도 사람이라면 이 왼편마저 때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옹심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주 그 왼편을 맞아야 할 때가 있다. 오른 뺨을 때렸다고 왼편을 대는 이를 보면서 마음에 찔림을 받아 멈추는 이는 경험상 그리 많지 않다. 아니 더 만만히 보고 더 크게 상처를 주고자 하는 이가 이 세상에 더 많다. 그러면 이 때 우리는 왼편을 돌려 댈 때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분함, 배신감, 분노, 더 나아가서는 오기까지 나오기 마련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 삶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자발적으로 이루어야할 그 장애는 때로 사람의 기본적인 자리마저 포기하게 할 때가 있다. 우리는 그걸 제자도라고 한다. 예수의 제자로서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이전의 삶과는 다른, 그래서 다른 이들의 삶의 가치와 방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그렇게 살아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전에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친형제인데 용서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분함이 쌓여서 마음에 병이 되고, 육체의 병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더 큰 상처는 예수 믿는 내가 용서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는 죄책감이다. 이런 인간의 마음을 아는지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시면서 마지막 구절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신다. 온전하라고 하시지만, 내가 읽기는 하나님처럼 온전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니 하는데까지 열심히 해 보라는 의미 같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읽고 그러지 못함에 대한 위로를 얻기도 한다.

 

함석헌 선생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자였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으며, 그렇게 가르쳤다. 자신을 때리는 제자들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가린 그의 모습을 본받아, 온전치 못한 나도 얼굴을 가릴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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