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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료실

[목회와신학] 교회 밖 목회에 대한 필요와 전망   15-03-13
조성돈   16,333
   목신-교회 밖 목회의 미래와 전망(15.02.10).hwp (22.0K) [42] DATE : 2015-03-13 21:59:37
 
교회 밖 목회에 대한 필요와 전망


목회자의 현실

작년 각 교단의 총회 결과를 보면 교인들은 줄어들었는데 목회자는 늘었다는 보고가 다수였다. 현재도 어려운 것이 목회의 현실인데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도 교회와 목회자의 수는 포화상태이다. 그런데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목회자 수가 더 증가하고 있다면, 현재 배출되고 있는 목회자의 자리는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교회개척에 대해서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요즘은 개척을 하여서 자립의 단계로 넘어갔다는 교회를 보기가 정말 어렵다.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실천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교수 초기 시절 학생들의 반응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100명 이하의 작은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였다가 학생들이 100명이 어떻게 작은교회냐는 반응을 한 것이다. 100명만 되어도 자립도 되고, 목회가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20명 남짓한 교실에서 100명이 넘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회자가 2명도 안 되었던 것이다. 10-20명 사이의 목회를 하고 있는 이들이 다수였고, 50명이 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비단 이것은 우리 학교의 학생들만의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교회의 현실이 정확히 이런 상황이라고 본다.
이런 현실에서 목회자들은 개척을 꺼리고 있다. 개척을 하여서 자립을 한다는 것이 요망해 보이기 때문이다. 보통 개척을 하면 전세보증금과 인테리어비용, 그리고 자립하기까지의 생활비와 교회유지비 등이 목돈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대략 3억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학교를 졸업하거나, 또는 부교역자로서 사역을 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쉽게 준비할 수 있는 돈은 아니다. 대개 빚을 얻거나 주변의 사람들을, 특히 가족들을 동원하여 이 자금을 마련하게 되는데 목회가 자립을 하지 못하면 이 돈은 결국 고스라니 빚으로 남게 된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소명 하나만으로 개척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개척이 어렵게 되니 부교역자들의 연수가 높아진다. 개척을 나가지 못하고 큰 교회 부교역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과거 부교역자들은 개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부역자는 담임목회자가 되기 위한 훈련의 의미가 컸다. 그래서 대개 부교역자들의 나이는 30대가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연령의 한계가 없어졌다. 나이가 지긋한 부교역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국 신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젊은 연령대의 목회자들은 담임목사가 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부교역자로 사역지를 얻기도 어렵게 된 것이다.
작년 3월 목회와신학에서 조사한 목회자의 이중직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목회자의 66.7%가 4인 가족 기준 최저생계비인 163만원에 못 미치는 수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에 더해서 법정에서 기준으로 하는 4인 가족 최저생계비인 244만원에 못 미치는 이들은 85.6%였다. 즉 현재 목회자의 85.6% 정도는 교회에서 주는 사례로서는 최저치의 생활도 유지하기가 어려운 형편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될 때 교회가 목회자들을 경제적으로 책임져 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목회자들은 가족의 생활과 교회의 유지를 위해서 사회에서 경제적 활동으로 내 몰린다.
내몰린다는 것은 목회자가 단지 생활을 위해서 사회에서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장에 내몰려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상처만 입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목회 이외에 아무런 직업적 훈련이 없는 목회자가,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신학을 전공으로 한 신학석사 타이틀의 육체노동자가 감당할 수 있는 일들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목회자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현재 목회자의 필요한 숫자를 생각해 볼 때 향후 몇 년 간은 목회자의 배출을 멈추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일은 불가능하다. 현재도 각 교단의 신학대학교에서는 목사후보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것도 부족하여 각종 신학교와 신학교육 기관들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목사후보생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목사의 자리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목회지를 가지고 목회를 하는 이들만을 목사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목사의 안수는 받았으나 그러한 자리를 얻지 못해서, 또는 다른 소명 가운데 사회에서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목사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목사, 그리고 그 신학

목사는 종종 평신도의 반대개념으로 이해된다. 즉 평신도들은 세상에서 살면서 때때로 교회를 찾아와 헌신하는 이들이고, 목사는 교회에서 전적인 헌신을 하고 때때로 세상에서 살게 되는 이들로 보는 것이다. 또 평신도는 세상에서 돈을 벌어 교회에 헌금하는 이들이고, 목사는 교회에서 돈을 벌어서 세상에서 먹고 사는 이들로 이해된다. 과연 목사는 이렇게 이해되는 것이 옳을까.
교회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세상과 구별되어지는 공간이나 건물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공동체 자체를 의미한다는 말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라고도 한다. 새로운 이스라엘로서 그 의미를 두면서 하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역시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목사는 이 공동체의 설교와 예배를 위해 세움을 받은 이들이다. 즉 공동체의 필요에 의해서 세워지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이들을 감독이라고 칭하였는데, 이들은 여러 장로들 가운데서 이 일을 위해 세움을 받은 이들을 뜻했다. 즉 장로들 가운데 설교와 예배 인도를 하는 이들을 가려서 감독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은 성직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직(Office)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다른 성도들과 구별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교회 공동체 가운데서 세워지고 존중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교회가 제도화 되면서 공동체와 관계없는 성직으로서의 목회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공동체 가운데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의 자격을 갖추어서 교회의 제도가 제시하는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이들은 지역교회를 벗어나서 그들의 수장이 되는 주교나 감독들에 의해서 임명되고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목회자는 성직으로 평신도와 구별이 되었다. 이들에게는 사도의 권위가 주어졌고, 제사장, 특히 대제사장의 반열로 이해되었다. 이들은 대제사장의 권위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미사, 즉 제사를 드리는 권한을 가졌다. 그러기에 이들은 평신도와 구별되어지는 거룩한 반열로 이해된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목사는 성직이 아니다. 그들은 공동체 가운데 필요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이들이다. 그 세움은 거룩한 반열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지만 설교와 예배인도의 직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평신도와 구별되는 이들이 아니라 성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 먼저 이해되어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가 된다는 것은 설교와 예배인도를 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자격을 얻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교단이나 노회, 또는 지방회에서 일정의 과정을 마치고, 그 기초적인 지식과 능력을 보아서 이러한 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인증한 것이 바로 목사의 직이다. 따라서 그가 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고, 설교와 예배인도를 하지 않는다면 목사로서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장로교에서는 목회를 하고 있지 않거나 이에 준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무임목사’라고 칭하고, 일정 기간 무임목사로 지내게 되면 목사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목사가 된다는 것을 제사장으로 이해를 하고, 교회에서 주는 사례만으로 살아야 한다거나, 교회를 벗어나서 생업이나 사역을 하는 것에 대해서 죄악시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목사가 된다는 것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일정의 자격을 갖춘 것을 인정 받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지 현실의 상황에서 목사가 하는 일을 교회 안에서 행하는 설교와 예배인도로 한정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남는다. 즉 다양화된 사회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고, 우리와 같이 기독교 사회가 아니라 다종교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이 다양하게 이해되어질 때 목사는 예배 가운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에 헌신하게 된다. 그것은 때로 사회봉사의 영역에 있기도 하고, 어린이집, 카페, 단체나 기관 사역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이들은 목사의 자격은 가지고 있지만 좀 더 큰 의미에서 그 사역의 장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는 미션얼 처치에 대한 논의를 아주 실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쉽게 이야기해서 과거의 기독교 국가들이 이제 선교지로 변했다는 현실인식에서 교회들이 찾아오라고 기다리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들을 찾아가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풍부한 기독교적 콘텐츠를 가지고 기존의 기독교인들에게 매력적인 교회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의 교회처럼 그들의 세상에서,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필요에 따라 교회를 움직여 가자는 것이다. 이에 의하면 목사는 결국 예배당을 지키는 주인이 아니라 이를 벗어나서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는 이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도 결국 목사는 성직의 가운을 입고 교회당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의 삶의 현장으로 같이 찾아가야 하는 것이고, 교회당의 거룩한 성도 가운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 교회와 거리를 둔 이들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이다.

세상 가운데 목사

목사가 하는 일을 교회 울타리 안으로 한정 짓는다면 극히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목사가 하는 일, 즉 목회를 교회가 하는 일로 확대해서 생각한다면 그 일은 무한으로 늘어날 것이다. 교회가 하는 일이라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일을 위해서 교회를 부르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 세상에서 주의 일을 감당하는 모든 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면, 역시 그 공동체에 속하는 목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이 사회에서 목사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어린이집, 아동센터, 복지관, 어린이도서관, 카페 등은 훌륭한 목회의 자리이다. 무엇보다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고, 그곳에서 교회를 경험할 수 있기에 교회가 할 수 있는 귀한 일이다. 그동안 어린이집은 교회가 하는 대표적인 사역의 장이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지역민들을 위해서 봉사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현장이다.
안양의 한 목사는 어린이도서관을 통해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교회의 가장 좋은 장소인 1층을 어린이도서관으로 만들어 놓고서는 아이들을 초청한다. 단지 책을 비치하고 읽는 장소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곳에서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인문학 강좌를 열기도 하고, 부모와 만나는 프로그램, 어린이청소년 캠프 등을 개최하며 어린이뿐만 아니라 부모들까지 참여하는 현장을 만든다. 이에 더해서 도서구입을 위한 바자회를 여는데 지역의 가게들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기증 받고 후원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교회는 지역의 중심이 되고 목사는 지역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또 가능한 것은 NGO의 상근직이 되는 것이다. 이것 역시 교회와 연계되는 것도 좋다. 지역의 NGO와 연계하여 선한 일에 앞장 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목사는 선한 가치를 제시하고, 재능을 이용하여 강연이나 사무직을 감당하는 것은 보람된 일이다. 이에 연계하여 지역운동가나 사회적 기업, 또는 협동조합의 일도 생각해 볼 일이다.
관광안내도 좋은 사역이 될 수 있다. 지역을 소개하고 안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역사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지역사학자로서의 역할까지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특히 지역의 역사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며 지역을 공동체로 만들어갈 수 있는 역사가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또는 지역 학교에 교양 프로그램의 강사로 출강하는 이들도 있다. 보통 대형 NGO에서 하는 세계시민교육이나 아동청소년 권리교육 등에 나가는 경우들이 있다. 또 기독교자살예방센터인 라이프호프의 프로그램으로 자살예방기초교육 무지개의 강사가 되는 일도 있다. 요즘과 같이 교과목의 진도는 끝나고 학교에 등교는 해야 하는 시기에 이러한 강사를 찾는 일들이 많다. 이를 통해서 좋은 교육도 진행하고 지역의 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무엇보다 농촌교회라면 농사를 지역민들과 함께 짓는 것이 좋다. 지역민들과 먼저 하나가 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어느 농촌지역 목사는 목회 가운데 축산학과를 다니고 졸업을 했다고 한다. 그제야 지역민들이 인정을 해 주고 이야기를 나누더라는 간증을 한다.

목회의 이해를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으로 향하면 목사가 해야 할 일들은 끝도 없다. 자신과 교회가 처해 있는 현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목사의 가운은 벗어 놓는 것이 좋다. 임마누엘하신 예수님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사역을 성직이라고 구별해 놓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교회 밖에서 우리의 사역을 얻고 나아가는 것이 현재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에서 미래이고 가능성이다. 이에 하나님과의 동역을 보여줄 때 성도들 역시 직업에 대한 새로운 소명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부교역자의 사역현황 조사 
[목회와 신학] 아름다운 은퇴를 위한 교회의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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