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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와 신학] 아름다운 은퇴를 위한 교회의 준비   15-01-07
관리자   13,022
   목신-목회자은퇴(1407).hwp (24.5K) [42] DATE : 2015-01-07 22:46:21
 
목회자의 은퇴는 영광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목회는 선한 싸움이며 동시에 나의 달려갈 길이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 7-9) 정말 쉬운 목회는 없다. 그 교회의 모습이 어떠하던지 목회는 영적 싸움이고, 우리가 쉼 없이 달려가야 할 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이 주님에 의해 예비 되어 있을 것으로 믿는다.
 현실적으로도 한 목회자가 평생 목회를 하며, 딴 길로 가지 아니하며, 그 어려운 목회 가운데 건강을 지켜 그 나이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영광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 모양이 어떠하던지 이미 그렇게 주의 길을 지켰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존경해야할 일이다.
 이렇게 은퇴하시는 목회자를 보며 성도들은 감동을 받는다. 보통 그 목회자를 통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세례를 받고, 아이들이 태어나서 그 목회자를 통하여 유아세례를 받은 과정이 있다. 말씀 가운데 깨달음을 얻고, 신앙의 깊은 감동 역시 그 목회자를 통해서 얻었다. 무엇보다 목회자의 삶에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삶, 주를 향한 열심, 교회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보면서 내 삶을 다잡았던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목사님이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은퇴하는 순간이니 그 자체가 감동인 것이다.

목회자 은퇴 규정이 없다

 그런데 요즘 많은 교회들이 목회자의 은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목회자가 은퇴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별다른 준비가 없이 맞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목회자의 은퇴에 대한 규정이 없다. 목회자가 은퇴할 때 교회가 어떻게 예우를 할 것인지 준비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은퇴하실 때 논의를 시작한다. 명칭이나 격은 어떻게 할 것인지, 경제적인 예우는 어떻게 할 것인지, 교회에 나오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지에 대해서 은퇴할 목회자와 장로 및 교인들이 논의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간 존경했던 목사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한 노인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거기다 교회의 리더인 장로들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잘 알고 있는 목사님은 한 교회에서 20년을 목회를 했다. 그런데 은퇴를 몇 달 남기지 않고 교회에서 쫓겨났다. 분명 쫓겨났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장로들에 의해서 해직 당한 것이다. 인격적으로 아주 존경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충격적이다. 그 몇 달이 지나서 명예롭게 은퇴를 하시면 그 교회의 원로목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가 그에 맞는 예우를 해 드려야 한다. 교회가, 교회라고 하기에는 부끄럽다, 그 교회의 리더에 속하는 이들이 그 부담을 지기 싫어서 은퇴 몇 달 남으신 분을 내쫓은 것이다.
 아는 교회 한 곳은 거꾸로다. 목사가 은퇴를 하는데 그 예우를 가지고 당회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교회는 상당히 큰 교회인데 목사의 욕심이 너무 컸다. 교회는 그 문제로 갑론을박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은퇴에 즈음하여 상여금을 얼마로 할 것인가에 대한 당회가 열리고 있었다. 목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니 당회 중에 목사에게 잠시 나가 계시라고 했다. 논의가 끝나서 목사를 찾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알고 보았더니 이미 목사는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자신의 충성된 재무장로에게 이야기해서 받아 놓았다. 논의를 하고 있는 동안 목사는 잠시 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길로 미국까지 도망을 간 것이다. 이후 교회는 혼란에 빠졌다. 교회가 깨어지고, 분란에 휩싸였다.
 이와 같이 영광이 되어야 할 목회자 은퇴의 자리가 돈으로 욕된 자리가 된다. 구체적인 액수가 오고가고, 누가 달라고 했고, 누가 못 주겠다고 했는지 그 이름까지 거론된다. 그 가운데 성도들은 그간 존경했고, 자기 신앙의 모범이었으며, 은혜의 통로였던 목사에게 실망한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다는 이들의 모습에서 실망하고 분노하게 된다. 결국 이를 통해서 교회를 떠나고 신앙마저 떠나가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사회적 현상, 노후문제

 과거에는 목회자의 은퇴 문제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70세를 넘겨서 교회에서 은퇴하시는 분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평균 수명도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목회자 중에 그렇게 장수하시는 분도 많지 않았다. 그러니 그렇게 큰 문제라고 할 수 없었다. 또 그렇게 은퇴를 하신다고 해도 70세 넘어 오래 사시는 분은 더 드물었다. 한국사회에서 노인문제가 이렇게 대두된 것이 오래지 않았다. 어느덧 우리는 100세 시대라고 한다. 사람들이 이제 100세까지 살게 될 것이니 노후설계를 이에 맞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다. 70세에 은퇴를 하고서도 30년을 더 살 것이라는 전제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전에는 노인분들은 자녀들이 돌보았다. 복지가 곧바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들이 그 부모를 돌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체계가 무너졌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것이다. 복지가 시스템화되고 정부차원에서 지원을 늘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목회자들에게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교회가 바로 노후대책이려니 하고 살았다. 개인적으로 노후대책을 세우는 것이 마치 신앙이 없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목회하는 내내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처럼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으로 살았는데 은퇴 이후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었다.
 목회자들은 교회가 큰 돈이 필요할 때면 아낌없이 헌금했다. 많은 목회자들은 교회당을 새로 지을 때면 솔선하여 헌금을 한다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내어놓기도 하고, 전세금이라고 빼어서 헌금을 했다. 그리고 십일조가 아니라 자신이 앞장서서 자신의 수익 대부분을 헌금으로 내어놓기도 했다. 목회자에게 교회는 생의 전부이며 모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은퇴한 이후에도 교회가 자신의 생활을 책임져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대책 없이 모든 걸 교회에 바쳤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막연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자녀들에게 거는 기대와 마찬가지이다. 자녀 교육에 전 재산을 들여서 아이를 키우면 이 아이가 자신을 부양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는 이 시대에 자녀가 부모를 공양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당장 아이들 학비와 학원비에 돈을 다 들이고 노후대책이 없다. 그냥 그 땐 어떻게 되겠지 하지만, 한 쪽 바램은 아이들이 내게 효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자녀들이 공양할 수 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음은 있어도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안 될 수도 있고, 부모가 했듯이 자녀들 뒷바라지 하느라 부모 뒷바라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은퇴하신 목사님 은혜롭게 뒷받침해 드리고 싶고, 품위 있는 노후생활이 가능하시도록 해 드리고 싶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순리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목회자 은퇴 사건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물론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첫째는 교회를 세습하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세습시키는 것이다. 원로목사를 세우고 그 경제적인 예우를 해 드리면서, 새로 부임하는 목사 사례를 드리는 것이 버거운 경우이다. 그래서 아들을 새로운 목사로 모시고, 은퇴하시는 목사는 그 아들이 부양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다. 즉 둘로 나누어야 할 지출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둘째는 작은교회의 경우는 은퇴하시는 목사 은퇴금 조차 드릴 여유가 안 된다. 그래서 대출 받아서 드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새로 오는 목사가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은퇴금을 적게나마 마련해 드리는 것이다.
 셋째는 더 심한 경우이다. 이러한 고리를 끊기 위해서 은퇴하는 목사가 후임선정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가 은퇴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청빙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래서 은퇴하는 목사는 아무 예우도 못 받고 나가고, 교인들이 후임목사에게 헌금을 받아서 교회 빚을 갚은 경우도 있다.
 넷째는 한때 화제가 되었던 이야기인데 은퇴하는 목사가 은퇴 조건을 가지고 장로들에게 개인적인 각서를 받은 경우다. 은퇴할 때야 존경하는 목사가 떠나니까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하지만, 교회를 떠나면 마음도 떠나서 교회가 슬그머니 그 예우를 떼어내는 것이다. 특히 교회가 건축을 하게 되는 경우 긴축과정에서 은퇴목사의 예우를 줄이거나 없애는 경우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는 못 믿겠고, 장로 개인에게 각서를 쓰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예들은 극단적인 것일 수 있다. 아무리 그럴까 싶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교회가 준비되지 못하고 교단이 아무런 대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각 교회별로, 그리고 각 개인별로 은퇴를 거래하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부는 목사가 은퇴하는데 아무 댓가 없이 떠나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목사에게도 현실은 동일하다. 현역 목사로서 예우를 받을 때는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은퇴를 하고 나면 여느 노인분들과 다른 바 없는 현실 가운데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목사가 은퇴하는데 너무 돈을 밝힌다고 하고, 일부는 너무 많은 돈을 챙겨서 나간다고 하는데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부가 은퇴하여 30년을 더 산다면 얼마가 필요할 것인가? 작은교회야 드릴려고 해도 없다고 하니 별 수 없지만 조금 규모가 되는 교회는 고민을 한다. 한 번 살펴보자. 출석교인이 500명인 교회에서 목사가 은퇴를 할 때 만약 10억을 준다면 어떨까? 출석교인이 500명이라고 하면 규모면에서는 결코 작은교회는 아니다. 아니 중간 이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보통 교인 1인당 헌금액을 150만 원 정도로 잡는데, 이런 계산으로 보면 이런 교회는 1년 예산이 7-8억 원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목사가 은퇴한다는데 10억을 드린다면 너무 큰 금액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은퇴하는 목사의 입장에서 보자. 현재 살고 있는 5억짜리 사택과 타고 있는 자동차 2천만 원을 그 금액에 합치고 나니 현금은 5억이 안 된다. 따로 모아놓은 재산도 없고 5억을 가지고 30년을 살 생각을 하니 답답한 것이다.

은퇴는 준비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은퇴를 위해서 목회자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역시 같이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해 보고자 한다. 첫째는 교회의 고용에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목회자를 청빙하면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 어떻게 예우를 하고,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교회가 감당할 것이지를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 뭔가 목사를 청빙하면서 세세한 내용들을 언급하고, 협상한다는 것이 부끄럽거나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으로 대부분의 목사들은 첫 월급을 타 보아야 자신의 봉급을 알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니 모든 부분들이 다 주먹구구다. 매년 월급은 얼마로 올려야 하는지, 상여금은 얼마로 나가야 하는지, 사택은 주는 것인지, 자동차는 어떻게 구입하고 운영하는지. 이 모든 것이 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 목사와 장로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교회마다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매해 예산을 세울 때 마다 목사의 사례를 올려야 될지, 올린다면 얼마를 올려야 될지 고민과 토론이 교회에서 암암리에 이루어진다. 이러한 고민과 토론이 건전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고민과 토론이 과열되면 싸움으로 번지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가 어려움을 겪게 되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처음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비슷한 이야기지만 교회에 규정이 명확해야 한다. 봉급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은퇴에 대한 예우까지 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어떨 때는 전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기분에 따라서 봉급이 다르고, 은퇴의 상황이 달라지는 경우들이 있다. 정해진 규정이 없으니 아무래도 몇몇 사람들이 휘두르는 대로 상황이 움직여 가는 것이다.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운영되어지면 결국 반발하는 그룹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규정이 없으면 일부 장로들과 목사가 편한대로 이끌어질 것 같지만, 그것이 교회가 편안할 때면 별 문제가 없어도 어려움이 생기면 빌미가 되고 싸움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특히 교회가 분란이 생기면 반대편에서 꼭 거는 대목이 횡령이다. 교회라는 곳이 명확한 규정이 없고, 감사와 감시가 그렇게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재정이 정해진 곳에 명확하게 사용되지 않는다. 특히 특별헌금이나 선교비로 들어오는 교회의 부수입 등이 명확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지출될 때는 좋은 곳에 편하게 지급을 하지만 결국 그것이 규정과 예산에 없는 지출이 되고 결국 법적으로는 횡령으로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은퇴에 대한 것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규정에 없이 지출되거나, 교회가 지정한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다면 결국 교회의 분란에 빌미가 되고, 심한 경우 법적인 문제로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은퇴적립금은 어떻게 하는 것으로 할 것인지, 그리고 그 적립금을 어떻게 따로 모아둘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목회자의 은퇴적립금을 숫자로만 정해놓고는 실제적으로는 적립이 안 되는 경우들도 있다. 또 이 적립금을 목회자가 스스로 교회의 헌금을 일으켜야 할 때 깨어 내어놓기도 한다.
 다른 경우는 목회자의 은퇴예우에 대한 규정도 필요하다. 정년이 되었을 때 은퇴, 명예, 공로, 원로 목사의 규정들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규정이 명확하다면 어려움이 없지만 교단이나 노회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에는 이러한 것도 정확히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작은교회의 경우 이 부분이 규정으로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면 역시 어려움을 가질 확률이 높다.
 셋째는 은퇴 준비는 미리 하라는 것이다. 아직 목사가 현역에 있고, 그 임기가 남아 있을 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 때는 교인들의 마음이 목사에게 있고, 목사 역시 아직 은퇴가 남아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임박해서 논의를 하게 되면 양 쪽 다 조바심을 갖게 되고, 닥친 현실에 기반하여 이야기하게 된다.
 목사들은 아직 임기가 남았는데 교인들이 자신의 은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싫을 수 있다. 특히 소위 말하는 레임덕 현상이 목회에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도 될 수 있다. 또 교인들의 입장에서도 목사가 있는데 그 가운데 은퇴를 얘기하는 것이 송구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은퇴라는 것은 현실이고, 심지어 돈과 예우에 대한 현실이 맞물려 있다.  그러나 서로 간에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있을 때 이야기를 시작하고 협력하고 협상하는 것이 나중에도 더 좋을 것이다.
 넷째는 이러한 것에 기반해서 퇴직금이 아니라 연금을 가입해 놓아야 한다. 목사와 사모까지 생각을 해 보면 은퇴 후 30년은 현실일 것이다. 교회에서 마련하는 퇴직금이라고 하는 것은 목돈이지만 불안정하다. 교회의 사정에 따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특히 규정이 없다면 약속된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공적기관에 목회자의 연금을 위탁하는 것이 더 좋다. 교단이 진행하고 있는 연금이나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은 기본으로 하고, 교회의 여건에 따라서는 사적인 기관인 보험회사나 금융기관의 연금을 추가로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해 놓아야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분란이나 교회의 어려움에도 목회자의 노후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교회들이 목사가 은퇴하고 나서 후임과의 갈등이나 교회와의 갈등으로 인해서 은퇴 후 받는 사례를 못 받는 경우들이 생겨난다. 또 교회에서 돈이 나오기 때문에 은퇴한 목사가 교회를 벗어나지 못하고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부분은 퇴직 적립금 형식으로 교회가 책임질 수 있을 것이고, 여건에 따라서는 목사와 일정 비율로 나누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는 은퇴 후 교회출석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어떤 목사는 은퇴 후 자신 있게 지금의 교회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교회에 나오면 후임이 부담스러울 것이고, 교인들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맞는 첫 주일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어느 교회로 갈 것인지를 정했다. 그 교회가 어떤지 일단 한 번 가보고자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시간 맞추어 차를 몰고 떠났는데 그 교회를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는 교회에 가자니 모양이 이상하고, 은퇴한 교회를 다시 찾아가자니 그것이 어색했다. 그래서 은퇴 후 첫 주일예배를 못 드리고 말았다. 그때 그 마음에 드는 생각이 ‘목사가 주일에 찾아갈 교회가 없다니’ 하는 것이었다.
 은퇴목사가 교회를 계속 찾아오는 것은 쉽지 않다. 주일예배를 전후하여 어디 앉아 있을 곳도 마땅치가 않다. 그렇다고 은퇴목사 사무실을 마련해 달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다고 교회를 안 나오면 그것도 모양이 안 나온다. 무슨 죄인도 아닌데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에 출석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나가보니 후임목사가 힘들어 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교인들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을 은퇴하는 목사가 알아서 하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 교회가 서기까지 그 길을 달려오신 목사를 그렇게 우왕좌왕하게 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교회는 정중하게 은퇴목사를 모셔야 한다. 아직 우리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 정해진 법칙이 없다. 교회들마다 이 부분을 명확히 하고, 노회나 총회와 같은 상회도 이에 맞는 규칙을 정해줄 필요가 있다.

은퇴, 한국교회의 재앙일 수 있다.

 은퇴의 문제는 이제 곧 한국교회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양복 한 벌 새로 해 입고 은퇴선물로 대신했다는 한 시골교회 목사의 이야기는 전설로만 느껴진다. 요즘 들리는 이야기들을 보면 노욕이라고 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은퇴이후 30년을 살아야 하는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간의 갈등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많은 교회들이 이 문제로 교회가 갈라지고 분란 가운데 빠지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은퇴이후 자리를 못 찾은 원로들의 태도와 이를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는 후임 간의 갈등이다. 어떤 교회는 이러한 분란으로 말미암아 원로목사의 지원을 모두 끊고 돌아섰다고도 한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은퇴하시는 분들은 불안할 것이고, 교회에 영향력을 거두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제 목회자의 은퇴문제는 좀 더 냉철하게 선례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도와 모범 사례들을 세워서 정리를 해야 할 부분이다. 이것이 안 될 때 앞으로 쏟아질 수많은 목회자의 은퇴는 한국교회에 재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수 15-11-21 18:49
답변  
글쓰신분이 목사님같은데 너무 염려하시는것 같군요.
그냥 주시는데로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는것이 성직자의 길이 아닐까요?
왜 이리 조바심이 나는지, 성직자들이 이렇게 조바심을 내고 있으니 성도들은 어떻게
내일일은 내일 염려하겠으며?/모든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질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에 70세까지 근무하고 퇴직금 받고 연금 알차게 받는 직업은 세상에 없다는것 아시죠?
단지 어려운 교회가 문제인데. 실상 중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시무하실때도 여유있게 받으신 분들이 또 노후문제로
난리를 치고 있어요..... 예수님은 인자가 머리둘곳이 없었는데>>>
     
한상훈 16-02-14 06:59
답변 삭제  
염려하지 말라고 했지 준비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무 준비도 없이 살고 어떤 노력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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