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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시티와 교회공동체-정 재 영   1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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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시티와 교회공동체


정 재 영(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1. 들어가는 말

영국 시인 윌리엄 쿠버는 “신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하였다. 그만큼 도시는 인위성이 축약된 공간이고, 동시에 매우 사회적인 공간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이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이 적극적으로 도시라는 공간을 사회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시는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또한 전통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특정 지역에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도시를 형성하였다. 근대 이전의 도시 공간은 전통 의식과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건축물과 도로, 그리고 광장 등이 주요 경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기의 도시들은 특정한 계층성을 지니는 사람들로 특징지어진다. 특히 근대 이후의 도시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과 함께 자본에 의해 지배되기 시작한다. 현대 도시 공간은 이제 더 이상 전통의 가치가 아니라 화폐 가치에 의해 지배된다. 아파트 주거공간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재산 증식 수단이 되고 있고, 자연과의 유기적인 관계나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요했던 여가 생활은 자본에 의해 인공으로 조성된 극장이나 영화관, 커피숍, 체육관 등에서 상품화된 소비생활의 연장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대의 도시들은 근대기의 도시들과 또다시 구별되는데, 이는 현대도시가 단일한 계층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다양한 계층에 의해 구성되기 때문에 일정 정도 다양성을 표출하며 세분화되는 특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시들은 시대에 따라 다른 특징들을 드러내며 발전해왔다. 이러한 도시가 중요한 것은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을 만큼 도시에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통 통신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대한 영향력이 비도시 지역에 비해 더 크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가 다수 등장하게 되면서 메가시티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메가시티는 기존의 현대 도시와도 일정 정도 차별된 특징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메가시티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지역 사람들과 차별된 삶을 살아갈 것이고 이것은 종교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현대 도시와 메가시티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메가시티와 공동체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2. 현대 도시와 메가 시티

1) 현대 도시와 도시민의 특징
일반적으로 도시란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가 조밀하며 1차 산업보다는 2차 산업이나 3차 산업에 종사하고, 다양한 직업의 기회가 있다는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비도시 지역에 비해 전문직 종사자가 많으며 소득 격차가 심한 것도 현대 도시의 특징을 이루는 부분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도시인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강하고 권위적인 방식보다는 민주적인 방식을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가족 형태도 비정형적인 핵가족 형태를 띠고 특히 1인 가구의 비중이 큰 것이 현대 도시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렇게 도시가 다른 지역과는 다른 모습을 띠게 되자 사회학자들은 이러한 도시의 모습에 주목하게 되었다.
근대 도시가 급격하게 발달하던 시기인 20세기 초에 사회학자인 퇴니스는 이를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로 표현하였다. 게마인샤프트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동체와 같은 특성을 갖는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가족과 이웃과 관련된 공동의 선, 공동의 이익,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일했다. 이러한 공동생활은 우리 의식(we-feeling)을 강화한다. 반면에, 게젤샤프트는 도시 사회로 도시 생활은 개인주의와 이기심을 특징으로 하며, 공동선에 대한 신념도 없고, 가족과 이웃 간의 유대도 별 의미가 없다. 도시에서는 성스러운 것이 세속화되고, 일관되고 안정된 삶이 혼란과 무규범의 삶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따스한 개인 관계들이 합리적이고, 비인격적인 익명성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근대 도시의 삶에 대해서 사회학자인 게오르그 짐멜은, 근대 도시의 삶의 가장 큰 특징을 ‘개별성’이라고 보았다. 근대도시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하던 자극의 거대한 경연장이 되었다. 따라서 대도시에 사는 개인들은 그 자극이 야기할지도 모르는 자아의 분열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종의 보호 장치를 만들어내게 된다. 보기를 들면,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외부에 대하여 어느 정도 ‘무감각한 태도’를 유지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 그리고 밀도 높은 도시의 군중 속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충돌을 방지하고 물리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공간의 여유를 심리적으로라도 만들어내려고 하는 ‘거리두기’의 태도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도시는 이렇게 부정적인 요소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도시는 더 풍요롭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삶의 양상도 다양해질 수 있다. 발달한 교통망을 통해 도시는 여러 지역의 문물을 더 빨리 받아들이게 되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여 문화의 전시장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다양하고 다원화된 환경에서 사는 도시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개방적인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촌락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외부 환경과의 접촉이 적기 때문에 이방인에 대해서 경계하는 태도를 지니고 낯선 것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반면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민들은 경계심이 적고 낯선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호기심을 갖는 경향을 나타내게 되어 상반되는 기질을 발달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촌락 공동체는 동질성에 기반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서도 화자가 청자에게 이미 이해할 것을 기대하여 많은 가정을 함축하는 언어를 구사한다. 이에 반해 도시인들은 단어의 의미가 특정한 상황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개별화된 언어 표현법을 선호한다. 곧 보다 논리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특성을 갖는다.

2) 메가시티 서울
도시 인구 및 도시 수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1900년대에는 세계 인구의 3%만이 도시에 거주했으나 2009년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인구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UN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32억 명 정도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50억 명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특정 도시로의 인구 집중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도시화의 특징은 거주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초거대도시 메가시티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가시티는 하나의 거점 도시가 많은 인구와 자원을 흡수하여 인구와 영역이 거대화되어 형성된다. 이러한 메가시티는 현재와 미래의 삶을 변화시킬 중요한 사회현상이다. 1950년대만 해도 메가시티는 런던과 뉴욕뿐이었으나 1980년대에는 10개의 도시로 늘어났고, 2천년을 넘으면서 2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2025년에는 전세계에 30개 가까운 메가시티가 존재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메가시티는 그것이 차지할 정치, 경제, 사회적 중요성 때문에 최근 들어 크게 주목받고 있다.
메가시티 중의 하나인 서울이 근대 도시의 형태를 띄게 된 것은 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 아래서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 시행하면서 서울 중심의 개발 정책을 따라 수도권 인구 집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이다. 90년대 이후에는 서울의 인구 집중을 완화하기 위하여 수도권 신도시 개발을 추진하였음에도 신도시 역시 수도권의 일부로 수도권 인구 집중 추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를 통계 결과로 보면, 1960년에 전체 인구에서 29.5%에 불과했던 도시인구의 비율은 2000년에는 87.7%에 달했고, 현재 90% 가량의 인구가 도시에 살고 있다. 2010년 인구주택 총조사[인구센서스]에서 수도권 인구는 2,384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49.1%를 차지하며, 2000년 46.3%, 2005년 48.2%에 이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인구의 수도권 편중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은 단지 인구학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 측면에서도 심각하다. 각종 음악회나 전시회 등 특히 서구에서 도입된 고급문화 활동들은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고소득층의 전유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 활동의 사회공간적 집중은 다시 인구의 집중을 가속화시키면서 문화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지방 문화를 위축시켜 “지방자치는 있지만 문화자치는 없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수도권 인구 집중에 따라 주택 부족과 열악한 주거 환경 문제는 대대적인 주택 공급정책을 수립하게 되고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아파트 과잉 공급을 야기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아파트는 우리나라 도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아파트는 시세 차익을 노리는 재테크 또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아파트 건설은 지역의 자연적·인문적 특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콘크리트 상자 형태의 고층 건물로 건설되었고, 내부 공간도 구조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거주자들은 주거환경에서 아무런 미적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무미건조한 주거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택 가격의 급격한 변동으로 빈번한 주거 이동을 하게 되어 한 장소의 아파트가 자신의 삶의 터전이나 안식처라는 장소감은 거의 가질 수 없어 정주(定住) 의식이 약화된다. 또한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매우 배타적이고 비인격적이다. 최근에는 아파트에서 고독사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것은 집단 거주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안의 개인들은 더욱 고립, 단절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편리한 시설 이면에 여러 가지 갈등 요소를 내포하고 있고, 많은 인구가 모여 살고 있지만 오히려 ‘사람 사는 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날 메가시티 서울의 풍경이라고 하겠다.


3. 메가시티와 교회

1) 도시와 교회의 관계
위에서 살펴본 현대 도시의 특징들은 결국 물리적인 공간이나 시설만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 측면 곧 종교적 차원을 더욱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도시와 교회의 관계를 통해서 공동체 교회의 필요성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기독교는 본래 도시 친화적인 종교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막스 베버는 도시의 상업 계층은 합리주의 성향이 강하고 윤리적인 종교 경향이 강하다고 보았다. 미국의 경우, 유럽의 이민자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도시에서 교회의 성장률은 농촌 지역을 압도하였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도시 노동자들이 증가하면서 기독교는 설득력을 잃어가기 시작하였고, 반도시주의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후 기독교는 대개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국 교회 역시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다. 60-70년대 도시화를 빼놓고 한국교회의 성장사를 설명할 수 없으며, 70년대 강남 개발이 유명 대형 교회를 낳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90년대 이후에는 신도시 개발과 함께 교회도 신도시로 퍼져나갔다. 2008년 12월에 국민일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경기도가 1만 2527개로 교회 수 1위를 기록하였으며 수도권에 전체 교회의 46.6%가 집중돼 있었다. 2000∼2007년 통계청이 작성한 전국 시·군·구별 교회수 증감을 분석한 결과 대규모 신도시가 들어선 곳에서 교회도 200개 이상씩 급증하였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치, 경제, 문화 자원 뿐만 아니라 종교 단체인 교회도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신도시는 좁은 공간에 인구가 밀집돼 있어서 교회 성장의 측면에서 기회의 땅이라고 여겨졌고, 실제로 최근 20-30년 사이에 급성장한 교회들은 대부분 신도시의 교회들이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회자들은 제일 먼저 신도시 개발 정보를 수집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 결과로 신도시마다 교회가 난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지 못해 교회 건물이나 예배처소가 부동산에 매물로 줄줄이 나와 기독교 전체의 신뢰가 저하되는 등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얼마 전 감리교 선교국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10년 동안 감리교 서울연회에서 개척한 교회들 중 41%가 담임목사의 사임과 재정문제 등으로 폐쇄된 것으로 나타났고, 그나마 운영되는 교회도 절반 이상이 미자립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도시 지역 사람들의 종교성은 앞에서 살펴본 도시민들의 특징과 관련하여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이며 포용적인 경향이 있다. 감정적인 요소보다는 지성적인 요소가 중요하며 다분히 의례적이고, 이차관계적 성격이 두드러지고 현세 지향성이 강하다. 특히 현대 사회는 산업 사회 이후의 지식정보화 사회 또는 포스트모던 사회로 전환되고 있어 제도 종교의 의례, 가르침, 계율을 중시하지 않으면서 개인주의적인 종교 생활을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따라서 도시 지역에서의 목회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거나 권위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합리성에 기반하여 개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교인들이 교회 생활에 다양하게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별화 시대에는 집단적인 신앙 모임이나 부흥회와 같은 몰입형 집회보다는 스스로 묵상하고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는 방식의 영성 모임이나 경건 훈련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이머징 처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예술과 상징을 활용하여 거룩함과 신비를 경험하는 것을 중시하는 이머징 처치는 이러한 현대인들의 종교적인 욕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한 모방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래 미국에서는 교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이나 초신자들을 위해 기획된 구도자 예배가 한국에서는 그 외형만 따라하여 찬양 예배 형태로 정착된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머징 처치 역시 우리 사회의 종교적 정서와 현시대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욕구를 감안하여 이에 적합한 형태로 접목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2) 메가시티와 공동체 교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도시 지역에서는 개인주의 생활방식이 강하고 사회통제력이 약화되므로 종교가 지금까지 수행해 왔던 기능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종교로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으며, 종교는 사회통합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게 되어 ‘종교 영향력의 감소’라는 세속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이러한 환경에서 역설적으로 더욱 공동체 환경을 추구한다. 특히 메가시티에서 조직 구조의 거대화와 관료주의화는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친숙성이 어렵게 하며 비인격적인 인간관계를 초래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성과 인격의 상호성 또한 약해지고, 결국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니스벳은 이런 소외가 번져 나가는데 대한 유일한 대안은 “작은 규모와 안정된 구조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곧 사람들 사이에는 예전의 공동체를 그리워하고 공동체 안에 안주하려는 욕구가 심화되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은 일반 사회 조직과 똑같이 거대화되고 관료주의화된 교회 조직에 정착하지 못한다. 더 작고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집단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메가시티에서는 공동체 환경을 제공하는 교회를 필요로 한다. 이 글에서 공동체 교회라는 표현은 같은 물리적 공간 안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좁은 의미의 공동체만 아니라 공동체 환경을 제공하는 교회에 폭넓게 사용하고자 한다.
최근에 교회 안에서 다양한 소집단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이다.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도시민들에게 공동체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소집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집단 안에서의 대면 활동을 통해 인격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게 된다. 공동체는 대중이 아닌 소집단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소집단이 아니면 대면의 친밀감과 깊은 결속력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에서는 극장식 예배당에 앞을 보고 앉아 설교를 듣고 찬송을 부른다. 그리고 예배 후에 간단하게 식사하는 것을 교제라고 하지만 이런 식의 교제만으로는 친밀감과 결속력을 발달시킬 수가 없다. 적은 수가 정기적으로 모이는 소집단 안에서만 공동체의 특성들이 계발될 수 있다.
이러한 소집단은 서로 인격의 상호 교섭과 상호 격려를 통한 신앙의 진보를 가져오기 때문에 대형화 되어가고 조직화된 교회 속에서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대안이 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로버트 우스노우는 소집단 운동이 전통 공급 구조의 붕괴에 따른 공동체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에 터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사람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더 강한 의식을 제공하는 것이 처음부터 소집단 운동의 핵심 목적이라고 하면서, 소집단 운동이 공동체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바꾸고 영성을 재규정함으로써 사회를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메가시티와 같이, 극도의 다양성의 혼재와 종교의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로 사람들이 더 이상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할 때, 공동체 안에서의 사회 교섭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곧 공동체주의 운동의 지지자들과 자원 결사체의 지도자들이 했던 것처럼 구성원들 사이에 사회 교섭을 더 많이 증진시키는 것이다. 우스노우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 공동체 환경에서 서로 상호작용할 때 대인 신뢰를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신뢰감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관점에서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며, 시민 사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공동체의 일원인 기독교인들은 다른 기독교인들이 신뢰받을 수 있다고 확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며 공동체 운동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들이 시민으로서 참여하도록 북돋는다.
이러한 뜻에서 공동체는 단순히 특정 공간에 개인들이 모여 있다는 뜻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사회성으로 서로 의존하고 토론과 의사 결정에 함께 참여하는 집단이다. 또한 집단의 목적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선한 것으로 공유되는 ‘실천’을 함께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가리킨다. 이러한 공동체는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문을 닫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주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공동체 밖으로 표출할 수 있는 도덕 공동체인 것이다. 일찍이 퓌스텔 드 쿨랑주가 「고대도시」에 썼듯이, 고대 도시에서 신은 ‘도시’의 신이었으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특정 도시 경계 안에 갇혀 있지 않고 그 공간을 초월한다. 이러한 기독교 공동체는 특정 집단의 배타성을 초월하여 삶의 양식과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며,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도덕 집단이어야 한다.
이러한 공동체는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이것은 교회가 변하는 조건에 적응할 뿐 아니라 개인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는 자체의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는 개인의 정체성의 기초가 된다. 우스노우는 종교적 정체성이 개인에게 중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발전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직면한 여러 사회 문제들은 그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적 흐름을 반영하고, 이런 문제들은 현대 세계에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스노우는 공동체의 문제가 근본적이라고 말한다. 교회가 공동체를 제공할 수 없다면 다른 어느 실용적인 관심들도 교회의 특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칼 라너의 말을 빌어 “공동체는 결국 하나님이 이 신 없는 세상에 세운 눈에 보이는 구원의 표지”라고 표현한다.


  4. 메가시티에서 공동체 교회의 역할

1) 안으로의 공동체성
공동체 개념은 두 가지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공동체 내부 결속과 관련된 ‘공동체 의식’의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과 실천의 공동체로서 ‘공동체 정신’과 관련된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을 두 측면, 곧 안으로의 공동체와 밖으로의 공동체라는 개념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먼저 안으로의 공동체는 공동체의 통합 측면 곧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연합과 결속에 대한 것이다. 공동체 의식은 개인들 사이의 직접 교섭을 통한 공동생활의 원리 습득이라는 뜻에서, 대부분 개인주의화되고 해체된 사회관계를 복원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 의식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소속감 및 교섭을 통한 결속과 관련된 집합 의식과 함께,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 발전하려는 실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70, 80년대의 한국교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전통의 공동체가 와해된 한국 사회에서 대체 공동체의 역할을 했으나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교회 자체가 대형화, 관료제화되면서 공동체성을 상실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안으로의 공동체성을 회복한다면 교회는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에게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하고, 공동체 환경에서 형성되는 폭넓고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통해 사회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메가시티에서는 규모가 작은 공동체형 교회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교회가 도시민들에게 필요한 공동체 의식의 회복과 개인들의 소외감을 극복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은 교회가 갖는 장점은 첫째로, 교회 공동체성의 구현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공동체의 필수 요건인 대면(face to face)의 친밀한 인격 관계를 형성하는 데 적합하다. 작은 교회는 익명성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교인들이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스스로를 개방하고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이에 보다 더 인격적인 교제를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대형 교회들은 교인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구획이 나눠짐으로써 분절화되고 단절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이와는 달리 작은 교회에서는 남녀노소를 아울러서 교제를 하고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보다 더 신앙 공동체에 적합한 모습이며 이를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유리하다.
둘째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역동적인 참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작은 교회가 갖는 큰 강점이다. 큰 교회일수록 참여자가 소수에 제한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전체 교인의 20%만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나머지 80%는 마치 고객과 같이 소극적으로 남아 있는 경향이 있다. 미국 교회들에 대한 연구에서 보면 교회들의 참여도는 교회의 규모와 반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큰 교회의 교인들은 책임도 적게 지고, 헌금도 적게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가 커지면 교회 일의 많은 부분을 유급 직원들에게 넘기는 경향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교회의 견고한 결속을 해치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뿐만 아니라, 큰 교회는 효율성을 중시하게 되므로 교회조차도 관료제적인 특징을 닮아가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모든 교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에 다수의 참여와 과정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 구조이다. 특히 작은 교회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비중 있게 교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사람 개발 측면에서 더 유리하다.
셋째로, 작은 교회는 아래로부터의(bottom up) 리더십을 통해 쌍방향 의사소통 구조의 구현이 가능하다. 근대적인 리더십은 이른바 ‘교사-학생’ 모델로 지도자의 리더십이 상명하달로 전달되는 위로부터의(top down) 모델이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여전히 올바른 방법과 전략만 갖는다면 원하는 미래를 예견할 수도 있고 관리할 수도 있다고 약속하는 근대화 기획에 매료되어 있다. 이들에게 그 미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는 대형 교회들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 사회가 변화해나가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다. 사회는 점점 더 불확실한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탈현대적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거창한 사명 선언이나 전략적 기획보다는 지역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그들에게 일어나는 실제적인 변화에 주목하면서 지도자와 구성원이 함께 자기들 나름대로의 대안을 마련해가는 아래로부터의 활동이 적실성을 가질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들어맞는 보편적인 원리를 추구하고 거대 담론을 논하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스스로 자기들만의 삶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탈현대 시대의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바로 이러한 리더십의 구현이 작은 교회에서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형 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를 엄격히 구분하고 평신도 역시 직분에 따른 위계서열을 중시하는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라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민주스럽고 평등한 구조를 추구해야 한다. 기존의 중앙 집권식 통제 구조에서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소집단들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지방 분권식 위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소집단은 다양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줄뿐만 아니라 거대 조직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의도적으로 서로 마주하며 일하도록 구성된 소집단에서는 능력 함양과 주인 의식이 주어짐으로써, 위에서부터 아래로 통제하는 제도가 아니라, 분권화된 참여 민주 조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집단을 중심으로 연결망형 구조를 갖는 교회는 안으로 공동체 의식을 강화할 뿐 아니라 외부 활동에도 효과를 높일 수 있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이른바 ‘가나안 성도’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필자의 조사 결과, 가나안 성도들은 사회학에서 말하는 ‘교회의 제도화’에 저항하면서 교회의 공동체성을 확보하고자 애쓰는 이들로 파악되었다. 필자는 가나안 성도들이 모여 있는 교회 세 곳을 방문하여 참여관찰 하였는데, 세 곳 모두 참여자는 20명 이내의 적은 인원들이 모이고 있었고, 모두 주일 오후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세 교회에서 발견된 공통점은 적은 수가 모여서 공동체적인 환경에서 인격적인 교제를 하고, 리더십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적은 수가 모이기 때문에 친밀한 대면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예전 예배를 드리는 한 교회 외에 두 곳은 예배도 둘러 앉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드린다. 그리고 제도화된 기성 교회와 달리 이들은 특정인이 리더십이나 권위를 독점하지 않고 구성원들 모두 자유롭게 의사 표시를 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도 참여하는 특징을 보인다.
유동성이 증가하고 파편화되는 메가시티 사람들에게는 점차 공동체를 추구하는 욕구가 증대하게 될 것이다. 특히 부모 세대에 비해 종교적 충성도가 낮은 젊은 세대들은 교회 권위에 무조건 순종하기보다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이것이 교회 운영에도 반영되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상명하복을 강조하게 되는 관료제적 대형 교회보다는 아래로부터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회중 중심의 중소형 교회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를 찾고 있는 가나안 성도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2) ‘밖으로의’ 공동체성
다음으로, 밖으로의 공동체는 교회가 자체 내의 공동체를 이룰 뿐만 아니라 교회의 도덕적인 공동체성이 교회 밖으로 나가서 사회 안에 구현될 수 있는 ‘공동체 정신’을 나타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앙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도덕 공동체이다. 일찍이 뒤르케임은,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공통된 이념들을 가지고 공동의 의식들을 수행하는 하나의 종교 공동체를 뜻한다고 말하였다. 교회는 성직자들의 집단이 아니라 단일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믿는 이들에 의하여 구성되는 “도덕 공동체”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도덕 공동체’로서의 교회 공동체는 일반 사회에서 말하는 시민 공동체와 중첩되는 특징을 갖는 것이며, 일종의 자발 결사체인 교회는 현대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적 시민을 길러내는 조직의 측면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발 결사체란 어떤 특정한 목적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모임을 뜻하는데, 로버트 벨라 등 많은 사회학자들이 시민을 키우는 학교로서 자발 결사체의 역할에 주목해 왔다. 자발 결사체 안에서의 경험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책임이라는 시민의 덕목을 양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의 자발 결사체로 이해될 수 있는 교회 역시 사사로운 개인이 사회에 대한 책임과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배우는 학습장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종교의 공공성과도 관련된다. 뒤르케임이 종교의 근원을 사회라고 본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종교 신념은 전부 개인의 것이고 사사로운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영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영성은 개인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수준에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에 의해 개인의 느낌을 고립시키고 소외시키는 사사화된 신앙의 경향이 조장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의 추구는 그 내부 속성상 공동체 삶을 부정하기 때문에 재생산 자체가 불가능하고 설사 그들만의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확장되고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지평에서 어떠한 기여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에 반하는 사사로운 경건은 성서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며, 성숙한 기독교인의 관심은 마땅히 공공으로 확장되고 공동체의 삶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 로버트 벨라는 이러한 개인주의 종교의 출현과 확산에 대해 우려하면서 시민 종교를 강조한 것이다.
우스노우 역시 공동체의 결여는 그 자체로서도 심각하지만, 영성이 얼마나 밀접하게 공동체와 연결되어 왔나를 생각하면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은 영성이 봉사 공동체의 힘과 지원과 의미 있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영성이 우리 사회의 도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한다. 영성이 다시는 개인 속으로 깊이 은거하여 나오지 않을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우스노우는 이러한 영성은 진정한 영성이 아니라고 말한다. 확실히 한 사람의 신앙은 개인의 것이고, 신념의 문제이고, 그 사람의 기본 인생관의 일부인 믿음이지만, 종교 믿음이 개인의 것이고 사사로운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믿음이 지닌 공공의 차원을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속화된 사회에서 종교 권위를 회복하려면 공동체를 통해 교회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공공의 참여에 대한 의식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공공성은 종교가 시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종의 사회 자본이 되기도 한다. 종교 모임은 다른 시민 조직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대인 기술을 얻고, 직업, 후원 집단, 공공 행사에 절대 필요한 정보가 의존하는 연결망을 발전시키면서 사람들이 서로 교섭하고 신뢰하는 것을 배우는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자본은 교회가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3) 지역공동체 운동
위에서 살펴본 교회의 공동체 정신을 지역사회에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지역공동체 운동이다. 전통적인 촌락공동체가 붕괴되고 극도로 다양성이 심화된 도시 지역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역공동체 운동이 매우 시급하다. 특히 메가시티에서는 조직이 대규모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능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 단위들이 매우 개인주의화 또는 다원화 되어 있으며 또한 극히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또한 더욱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뒤처지거나 소외될 우려가 큰 인구집단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도 메가시티의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가족의 해체와 신체적 정서적 변화로 고통 받는 고령자, 생활의 기본 욕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빈곤층의 문제는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취업, 이민, 유학 등의 이유로 다양한 문화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메가시티 서울에는 점점 더 다양한 문화와 가치, 종교, 생활양식 등이 혼재되고 이로 인한 사회 갈등도 심화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메가시티의 장점이 될 수 있는 첨단 기술과 거대한 규모, 높은 경제 수준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메가시티의 큰 과제 중의 하나이다. 정주 의식이 약한 메가시티의 도시민들에게 지역에 대한 안정감과 지역에 대한 관심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보다 앞서 경험한 일본은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황폐화된 지역이 증가하는 등의 도시 공동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하여 도시 내부 문제 연구에 몰두하여 고안된 것이 마을 만들기를 포함한 다양한 지역공동체 운동인 것이다.
메가시티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메가시티의 도시민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공동체의 구축과 공동체적 정체성의 회복을 필요로 한다. 도시 사회를 구성하는 조밀한 인구밀도는 경쟁과 이기주의를 심화시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호 조밀한 주거와 대면 접촉의 빈도 증대를 가져온다. 이러한 조밀성과 접촉 빈도의 증대는 공동체 구성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민들의 대의기관으로 구성된 국가가 현재 발생하고 있는 도시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게 됨에 따라 공동체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지역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이 ‘새로운’ 지역 공동체는 교회와 시민사회가 만나는 지점을 제공한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요구는 증대하는 대신에 정부의 예산부담은 줄여야 하는 추세가 뚜렷하므로 결국 기대어야 할 곳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부문뿐이라는 기대가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교회 역시 시민 사회에 속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인적, 물적, 제도적 자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교회가 한 축을 감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교회는 종래 시민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던 사회적 제도―학교, 가족, 정부, 회사, 근린집단, 전통 교회 등―가 제대로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생긴 사회적 공백을 메우고 지역공동체를 재조직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당위성을 지니게 되었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그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최근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마을 만들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는 주로 지역사회개발운동으로 지역사회 주민들의 자주적인 참여와 주도적 노력으로 지역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조건의 향상을 추구해왔다. ‘참여’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동체주의 운동 활성화가 필요해지면서,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와 다양한 기관과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경제 발전이나 개발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 형성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인주의 사회가 경쟁을 앞세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원리가 지배한다면, 공동체 운동은 배려와 관심으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마을 만들기는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지역 사회를 재구조화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마을 만들기 운동은 일종의 주민자치운동으로 여기서 ‘마을’이란 시민 전체가 공유하는 것임을 자각할 수 있고 공동으로 이용하며 활용할 수 있는 장을 총칭한다. 대부분의 도시 계획이나 도시 재개발 사업이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이라면, 마을 만들기는 관 주도의 지역 개발 운동에 오히려 저항하며 주민들의 주체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 가장 큰 대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뜻에서 관변식, 학술적 한자어를 피하여 ‘마을’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을 만들기’란 그 공동의 장을 시민이 공동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말한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는 ‘눈에 보이는 마을 만들기’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 만들기’의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눈에 보이는 마을’이란 말 그대로 물질로 구성되어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마을을 뜻하는 것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을’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활동으로 형성되는 마을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 만들기’는 ‘사람 만들기’를 포함하는데, 곧 시민의식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이 되도록 의식을 개혁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을 만들기 운동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시민의식은 기독교 정신과도 통하는 것이며,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기독교의 가치를 지향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일차로 예배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시민공동체이기도 하다. 하나의 의례행위로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교회가 터한 지역 사회를 공동체화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는 개교회 내부 결속력은 강하지만, 다른 교회와의 협력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연계 활동은 부족하므로 이에 대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메가시티라고 하는 거대한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물질과 제도 자원이 지역사회를 위해 효과 있게 활용될 뿐만 아니라 교회 구성원들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 공동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5. 나가는 말

도시의 인구 집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인위성과 다양성이 극대화되는 메가시티에서는 편리함만큼이나 정신적인 공허함도 커질 것이고 그만큼 종교의 역할은 더욱 증요하다. 그러나 현대성이 극단화되는 메가시티에서는 근대적인 종교는 적실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산업사회 시기의 대량생산 방식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을 추구하듯이, 교회에서도 대규모 방식의 활동보다는 각각의 필요에 적절하게 반응할 수 있는 다양한 소모임을 통한 활동이 적합할 것이다.
이렇게 작은 공동체형 교회는 구성원간의 친밀도를 높이고 개별화된 관계로부터 야기되는 인간관계의 소원함과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내부 공동체성이 강조되면 다른 공동체에 대해서는 배타성이 증가하고 더 넓은 사회적 차원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어 건강한 공동체가 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공동체성은 안팎으로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공동체 교회 유지의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다양한 인구 집단의 밀집으로 인하여 필요에 따른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워 사회안전망이 미치지 못하는 메가시티 환경에서는 이를 상쇄할 지역공동체 운동이 필요하다.
교회는 이러한 지역공동체 운동의 주체가 될 만한 문화적, 물질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독교는 타인에 대한 헌신이나 돌봄의 윤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가시티에서는 경제적인 격차도 심해지고 도시 빈곤 문제도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있으므로 교회는 자본주의 4.0과 관련된 공동체 자본주의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협동조합은 기독교 사회운동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교회가 이러한 대안 경제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메가시티의 경제 문제를 극복하고 지역사회를 활성화하고 공동체화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서평] 사회를 말하는 사회 
한국 개신교 신학대학의 현황과 실태-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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