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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한 사회를 꿈꿀 수 있을까?-정 재 영   1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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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한 사회를 꿈꿀 수 있을까?


정 재 영(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종교사회학)

세월호 사건을 보며
지난달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깊고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실들이 총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이쩌면 세월호 사건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고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박한 자본가들, 일찍이 막스 베버가 말했던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터한 자본주의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이토록 경영 윤리도 없이 또한 직업 윤리도 없이 회사를 경영하고 직업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선장을 포함해서 많은 선원들이 비정규직 직원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들에게 직업 윤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 회사는 50대 중반만 되면 일방적으로 해고하고 계약직으로 재고용하면서 저임금을 강요했다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선원들 중 상당수가 구원에 대한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있는 구원파 신도들이었다고 하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을 구원파들의 만행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일정 부분 구원파와 연루된 점이 있으나 모든 일이 구원파에서 비롯된 것으로만 본다면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사고 이후 정부의 부실한 대처를 보더라도 그렇다. 해상 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치밀한 구조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했으나 정부의 대처는 너무나 안일했고 미흡하기 그지없었다. 관료들은 저마다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고,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현장 파악이 제대로 안된 관료가 구조 책임을 맡으면서 구조는 전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실종자 중에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정부는 이렇게 학부모들과 국민들을 큰 혼란 속에 빠뜨려 넣고도 유언비어 유포 엄단을 외치며 언로를 통제하는 데 급급했을 뿐 신뢰할만한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였다. 사회에서 루머가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주변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뿌리 깊은 동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높으면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의미 있는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불확실성을 낮추기 위해 애를 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불확실한 정보에라도 의존하여 사회를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루머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기름을 붓는 것이 불신이다. 사회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게 되면 루머는 걷잡을 수없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루머의 영향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부정적인 소문이 위험을 경고하는 기능을 하고 상황을 인식하고 대처하게 하기도 하기 때문에 소문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이해하고 통제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몇 년 전에 인터넷 실명제에 대하여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린 것도 비슷한 취지이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마음대로 밝힐 수 없다면 원활한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정부는 언로를 차단하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추어 국민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원칙과 절차의 문제
일부에서는 이러한 혼란기에 정부나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혼란을 부추긴다고 이야기하지만 문제는 덮어둔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을 정확하게 보고 말할 수 있어야 개선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앞으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번 사건 이후에도 아무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구분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야만 우리 사회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더 큰 절망감에 빠지는 것은 이러한 기대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나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이며, 정부 역시 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되는 것이다. 특히 서양에서는 200~300년에 걸쳐서 서서히 근대화를 이룬 반면에 우리 사회는 50~60년 사이에 ‘압축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서양과 같이 근대화의 외양은 갖추었으나 실상은 여전히 전통적이고 전근대적인 요소들이 뒤엉켜 있다. 합리적인 절차와 규칙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는 온정주의와 연고주의, 그리고 온갖 편법과 탈법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매뉴얼만 봐도 그렇다. 일각에서는 매뉴얼이 없다고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는 갖가지 매뉴얼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매뉴얼이 실제로 활용 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운사는 선박 운행에 관한 거의 모든 매뉴얼을 무시하다시피했고, 단원고 역시 수학여행 관련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으며 해경마저도 해상구조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 원칙과 절차는 갖춰져 있으나 현실에서는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원칙과 절차를 지키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한 가지는 다른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지 않을 때 나만 원칙을 지키게 되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할 때 나만 빨리 가려고 불법 끼어들기를 하거나 고속도로에서 갓길 운전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데 이것은 기업을 운영하거나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또 한 가지는 원칙과 절차가 이 일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몇 명의 전문가가 탁상행정 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매뉴얼은 위로부터의(top down) 방법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bottom up) 방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뿌리 깊은 관행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선장과 선원을 극형에 처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선한 사회를 꿈꾸며
현대 사회에서는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언제라도 대형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그의 저서 <위험사회>에서, 성찰과 반성이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고 역설한다. 위험은 성공적인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이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기 때문에, 후진국이 아니라 오히려 선진국에서 위험요소가 더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단순히 ‘안전한 사회’를 넘어 ‘선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 안전한 사회를 이루기에는 한계가 있으나 선한 사회를 위해 함께 노력할 때 우리는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사람들 사이의 신뢰이다. 현대 사회에서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위험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은 절대로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신뢰는 자기자신의 이익만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 곧 공공선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할 때 생기는 것이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을 넘어서 선한 이타심을 위해 힘을 모을 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싹 트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역할이 있다. 기독교는 타인을 위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돌봄이라는 선한 가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사람들이 이러한 가치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격려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선한 사회를 이루는 데 교회가 기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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